바둑판식 고인돌은 이름 그대로 다리가 달린 바둑판처럼 생긴 고인돌이에요. 청동기 시대 무덤인 고인돌은 형태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그중 바둑판식은 한국 남쪽 지역에 많이 남아 있어 남방식이라고도 불려요.
이 글에서는 바둑판식 고인돌의 구조, 탁자식이나 개석식과의 차이, 분포와 대표 유적, 화순 핑매바위 같은 대형 사례, 세계유산 등재까지 차례로 정리해요.
바둑판식 고인돌의 구조
바둑판식 고인돌은 먼저 땅을 파고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어요. 무덤방은 납작한 돌이나 깨뜨린 돌로 짜고, 그 위에 뚜껑돌을 덮어요. 여기까지가 시신을 묻는 지하 공간이에요.
그다음 지상에 받침돌을 4~8개 정도 일정한 간격으로 놓고, 그 위에 커다란 덮개돌을 얹어요. 받침돌이 낮게 놓이고 덮개돌이 넓적하게 덮이는 모양 때문에 다리 달린 바둑판 같다는 표현이 나왔어요.
이 구조에서 핵심은 시신이 묻히는 자리가 지상이 아니라 지하라는 점이에요. 지상의 받침돌과 덮개돌은 무덤을 표시하는 상징물이고, 실제 매장 공간은 땅속에 따로 있어요.
탁자식과 개석식 비교
고인돌은 크게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으로 나뉘어요. 세 종류는 무덤방의 위치와 지상 구조로 구분해요.
- 탁자식: 판석 여러 장으로 네 벽을 세우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어 마치 탁자처럼 생겼어요. 무덤방이 지상에 드러나 있고, 주로 한반도 북쪽에 많아 북방식이라고도 불려요.
- 바둑판식: 지하에 무덤방을 두고 지상에 낮은 받침돌과 덮개돌을 놓아요. 한국 남쪽에 집중돼 남방식이라고 해요.
- 개석식: 지하 무덤방 위에 받침돌 없이 덮개돌만 얹은 형태예요. 받침돌이 없어서 지상에서는 큰 돌 하나만 보여요.
탁자식은 무덤방이 높이 솟아 있어서 멀리서도 눈에 띄고, 바둑판식은 덮개돌이 낮게 놓여 있어서 규모가 커도 상대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줘요. 두 형태의 관계에 대해서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고, 바둑판식 고인돌이 탁자식 고인돌에 관한 의문을 푼다는 제목의 글도 있어요.
분포와 대표 유적
바둑판식 고인돌은 우리나라 남쪽에 집중돼 있어요. 전남 화순, 전북 고창처럼 고인돌이 밀집한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어요. 반면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은 대표적인 탁자식으로 알려져 있어서, 같은 세계유산 안에서도 형태가 서로 달라요.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은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어요. 한국은 세계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로, 수만 기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고창 고인돌 유적은 죽림리 일대에 밀집해 있어서 산책하듯 둘러보기 좋고, 화순 고인돌 유적은 효산리와 대신리에 걸쳐 있어요. 강화 고인돌은 하점면 부근리 일대에서 볼 수 있어요.
화순 핑매바위
바둑판식 고인돌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화순의 핑매바위예요. 길이 7.3m, 폭 5m, 두께 4m이고 덮개돌 무게는 약 200톤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로 소개돼요. 한국관광공사 여행기사와 문화재 해설에서도 이 규모를 강조해요.
200톤짜리 돌을 옮겨 올린다는 것은 청동기 시대의 기술로는 엄청난 일이었어요. 인근 채석장에서 돌을 떼어 낸 뒤 통나무와 밧줄로 끌고 와 받침돌 위에 얹었을 것으로 추정돼요. 수많은 사람이 함께 움직였다는 뜻이라서, 고인돌은 당시 사회의 조직력을 보여 주는 증거로 읽혀요.
이 정도 무덤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은 무덤 주인이 큰 힘을 가진 지배층이었다는 의미예요. 고인돌 규모와 부장품의 차이를 통해 청동기 시대 사회에서 계층이 생겼다는 점을 알 수 있어요.
고인돌이라는 이름
고인돌이라는 이름은 돌을 괴어 놓았다는 뜻에서 나왔어요. 한자로는 지석묘, 받침돌이 있는 무덤이라는 의미로 쓰여요. 바둑판식 고인돌은 이름에 바둑판이 들어가서 형태를 떠올리기 쉬워요.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대표 무덤이지만, 모든 사람이 고인돌에 묻힌 것은 아니에요. 큰 돌을 옮겨 올릴 수 있는 공동체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에 지도자 계층의 무덤으로 보는 견해가 많아요.
정리
바둑판식 고인돌은 지하 무덤방 위에 받침돌 4~8개와 덮개돌을 얹은 형태로, 한국 남쪽에 집중돼 있어요. 무덤방이 지상에 드러나는 탁자식, 받침돌 없이 덮개돌만 있는 개석식과 구조로 구분되고, 화순 핑매바위는 200톤에 달하는 대표 사례예요. 고창·화순·강화 유적은 200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