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팅크 쇼스타코비치 전곡 사이클 데카 콘세르트헤바우 런던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소비에트 시대의 정치적 억압과 개인의 내면을 담아낸 복잡한 작품들로,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곡의 무게감이 크게 달라져요.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는 이런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곡을 녹음으로 남긴 몇 안 되는 서방 지휘자 중 한 명이에요.

1번부터 15번까지 완성한 전곡 사이클

하이팅크는 데카 클래식을 통해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번부터 15번까지 전곡 사이클을 완성했어요. 이 방대한 프로젝트는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와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두 악단이 함께 참여한 결과물이에요.

녹음은 1977년부터 1981년 사이에 이뤄졌고, 런던의 킹스웨이 홀과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바우 홀에서 세션이 진행됐어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교향곡 1, 2, 3, 4, 7, 9, 10, 15번은 런던 필하모닉과, 나머지 교향곡들은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했어요.

두 오케스트라를 나눠 활용한 이유

하이팅크가 이 시기 콘세르트헤바우와 런던 필하모닉 양쪽의 수석 지휘 직책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 오케스트라를 나눠서 사이클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이런 이원화된 녹음 구조는 오히려 각 교향곡의 성격에 맞는 오케스트라 색채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어요.

런던 필하모닉은 상대적으로 날카롭고 강렬한 금관 사운드로 쇼스타코비치의 풍자적이고 격렬한 악장들을 표현하는 데 강점을 보였고, 콘세르트헤바우는 깊고 균형 잡힌 현악 사운드로 보다 서정적이고 침잠하는 악장들을 다루는 데 어울렸다는 평가가 있어요.

후기 실황 녹음: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의 협연

전곡 사이클을 완성한 이후에도 하이팅크는 쇼스타코비치를 계속 다뤘어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BRSO)과의 협연에서도 실황 녹음들이 남았는데, 대표적으로 2006년 9월 뮌헨 필하모니 임 가스타익에서 열린 실황 공연에서 교향곡 8번을 녹음했어요.

또한 2015년 2월에는 교향곡 15번 실황이 녹음돼 BR-KLASSIK 레이블을 통해 발매됐어요. 15번은 쇼스타코비치의 마지막 교향곡으로, 인용구와 침묵이 뒤섞인 독특한 작품인데 하이팅크는 이 곡을 여러 차례 다시 지휘하며 각별한 애정을 보였어요.

쇼스타코비치 해석에서 드러나는 하이팅크의 특징

  • 절제된 템포 운용: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풍자와 냉소를 과장된 제스처 없이도 충분히 전달하는 균형 감각이 강점으로 꼽혀요.
  • 오케스트라 밸런스: 금관과 타악기가 두드러지는 악장에서도 전체 사운드의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는 지휘로 평가받아요.
  • 후기 교향곡에 대한 깊은 이해: 특히 14번, 15번처럼 실내악적이고 명상적인 후기 작품에서 하이팅크 특유의 섬세한 해석이 돋보인다는 평가가 많아요.

쇼스타코비치 사이클이 남긴 유산

서방 지휘자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다는 것은 1970~80년대 당시로서는 결코 흔한 시도가 아니었어요. 냉전 시기 소비에트 음악에 대한 서방의 관심이 지금처럼 보편적이지 않았던 시절, 하이팅크의 전곡 사이클은 서방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쇼스타코비치를 폭넓게 소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어요.

이 사이클은 이후 여러 차례 재발매되면서 지금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을 처음 접하는 청자들에게 자주 추천되는 표준 레퍼토리 중 하나로 남아 있어요. 콘세르트헤바우와 런던 필하모닉이라는 성격이 다른 두 악단의 색채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사이클만의 독특한 매력이에요.